<역사의 역사>
정치인에서 방송인과 작가로 전업한 유시민 작가는 꾸준히 책을 쓰고 있고, 출간한 책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일도 하기 힘든 세상에 여러 가지 일을 다 잘 해내고 있는 유시민 작가를 보면 분명 난 사람은 난 사람이다. 유시민 작가의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 읽는 편이다. 이 번에 출간한 <역사의 역사> 도 출간되고서 바로 읽었다. 작가의 유명세 덕분인지 이 책도 몇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의 책은 묘한 매력을 준다. 논리적이고 다소 건조하지만 쉽게 읽힌다. 특히 역사학자나 역사가가 아님에도 역사를 해석해 내는 유 작가만의 개성 있는 시각이 돋보여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역사의 역사>는 “역사의 역사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던 역사가와 역사서, 그 책들을 다룬 역사의 사건, 그리고 그 역사가들이 살았던 시대에 관한 르포를 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은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생각해 보았다"라고 했다. 실제 그는 헤로도토스에서부터 유발 하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가와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역사 해석을 저자 본인의 시각으로 제단하고 평가했다. 유작가는 역사서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글쓴이의 해석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석이 빠진 사실 기술의 역사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런데 역사를 사실만을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 살아보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고 사실만을 기술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미 누군가의 기록에만 의존한 역사 기술이라면, 기존 기술서의 재구성이라는 측면 이외에 어떤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 작가의 시선은 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멈춰 있다. 다만 기술자의 해석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유 작가의 랑케의 사실 중심의 역사 기술에 대한 혹평은 이해가 된다. 반면에 에드워드 카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는 보다 좋은 평가를 내린다. 작가의 균형 잡힌 역사 해석이 돋보인다고 했다. 그의 책이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와 과학을 연결하여 과거를 해석해낸 <총 균 쇠>의 저자 다이아몬드와 <사피엔스>로 알려진 유발 하라리 하라리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흥미롭다. <총 균 쇠>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기술한 역사 책이며,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 책이라는 점에서 과학과 역사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하여 두 저자의 역사에 대해 다소 독특하고, 창의적인 해석에 점수를 주었다. 분량이 많은 두 책을 오래전에 매우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총 균 쇠>는 번역서를 <사피엔스>는 원서로 읽었는데 역사 발전에 대한 특색 있는 해석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있다.
유시민 작가는 역사는 해석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술자만의 개성 있고 합리적이며 창의적인 해석이 있어야만 좋은 역사 책이라고 했다. 그가 소개한 역사서의 면면을 보면 몇 개의 책을 제외하고 다 저자의 해석이 잘 반영된 역사서라 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사건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기술자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학문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백 프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기술자에 따라 계속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근현대사 조차도 시각의 차이에 따른 기술 방법이 상이한데, 하물며, 고대 중세 시대의 역사는 어떠하겠는가?
<책 속으로>
인간은 다른 인간과 개별적, 집단적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동안 서로 협력하고 경쟁한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개개인과 집단의 성취, 협력, 갈등, 대립, 투쟁, 억압, 착취, 정복 전쟁과 크고 작은 살육 행위로 점철되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객관적이고 공평한 관점이 존재할 수는 있는가? 없다. 그 증거가 바로 '있었던 그대로' 과거를 보여주겠다고 한 랑케 자신이다. _138쪽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인류는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보편적 역사를 구축할 수 있는가?_167쪽
인간의 욕망을 사회가 어느 정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 형태는 자유민주주의로 수렴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세계 전체가 하나의 공동 시장이 될 것이다. _167쪽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_235쪽
문명 발전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은 환경 외에 다른게 있을 수 없다. 기술과 제도와 문화의 차이도 그 원인을 추적하면 결국 환경의 차이에 귀착된다. _29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