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도엽 〈속 시원한 글쓰기〉 - 글쓰기의 철학과 마주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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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글쓰기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글을 잘 써야겠다는 마음에, 머리에 힘이 들어간다. 자유롭고 편하게 쓰면 좋으련만 시간이 갈수록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가끔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글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명쾌한 논리와, 화려한 수식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표현들이 문장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는 글을 보면, 감탄사와 함께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 나온다. “아! 나도 이렇게 좀 쓸 수 없을까?”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소위 나의 ‘글빨’ 은 그렇게 늘지 않는다.
오도엽 시인이 지은 이 책 <속 시원한 글쓰기>는 소위 ‘선수처럼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질타한다.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 ‘멋있는 글’보다는 ‘맛있는 글’을 쓰라고 권유한다. 후자는 스토리와 감동이 있는 글을 의미한다. 꾸밈이 없는 글, 솔직한 글, 자신의 생각을 잘 담아낸 독창적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정의한다. 실제 어떤 글은 화려하지 않고, 형식도 어설프지만 감동과 울림을 준다. 바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글이 아닌가? 저자는 좋은 글을 맛있는 글이라 표현하며 한 번 읽히는 글이 아닌 되풀이 되어 읽힐 수 있는 글이라고 했다.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이 오랜 감동으로 남듯 진정성은 허울 좋은 형식으로 눈속임할 수 없는 것이다._32쪽(김별아의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
노동자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글 쓰기의 방법론과 스킬 보다는 글 쓰는 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글 쓰기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초보 글쟁이들을 위해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멋대로 쓰라고 한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꾸미려 하지 말고, 거침없이 토해내라고 역설한다. 프로가 쓴 글을 보고 주눅들지 말고, 글쓰기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것을 조언한다.
저자는 노동자 출신의 작가답게 책에 인용한 대부분의 글쓰기 사례를 노동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웠다. 읽다 보면 글 쓰기 책인지 사회성 짙은 에세이인지 혼동이 될 정도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글속에 선명하게 묻어나 있다. 이 땅에 소외된 약자와, 노동자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고, 몸으로 항거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마음도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도움을 준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형식에 얽매여 주눅들어 있는 독자들에게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 글을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는 가발공장 노동자의 글, 버스를 운전하다 잡지 편집장의 길로 들어선 버스기사의 글들은 글쓰기가 어렵지 않음을 알려준다. 글쓰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결국 형식보다는 소재의 결함, 생각의 빈곤임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볼 수 있는 마음, 고정된 관념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제스쳐로 생각하려는 열정과 노력들은 좋은 글쓰기를 위해 꼭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방법론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몇 가지 팁도 소개한다. 첫 문장의 중요성, 의미전달이 명확한 단문의 장점, 반복적인 단어 피하기 등 다른 글쓰기 책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글쓰기 방법에 대해 배우고 싶은 독자보다는 글쓰기가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다. 그래서 글쓰기 철학서라고 하면 더 적절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마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지금까지 글쓰기 태도와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는 책이다.
<속 시원한 글쓰기> / 오도엽 / P296 / '12. 10. 27 by East-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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