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앱 갯수 줄이고

현관에 휴대폰 올려 놓고 집에선 쳐다보지도 않아

단식 돕는 앱 나와

30분~48시간 휴대폰 잠글 수 있어

잠금 중간에 풀려면 일정 금액 결제해야

강원 동해시에 사는 장새롬(여·32)씨는 3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1년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의식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남겼다. 그는 지난 7월 스마트폰을 처분하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폴더폰을 마련했다. 장씨는 "인간관계가 단절될까봐 스마트폰만은 못 없애고 있었는데 어차피 만날 사람은 전화를 하거나 직접 얼굴 보며 만난다"며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나에 대해 더 돌아보게 됐고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는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을 간소하게 꾸리는 '미니멀 라이프'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떠오르면서 '디지털 단식(斷食)'에 뛰어드는 사람도 늘고 있다. 스마트폰을 잠깐 꺼두거나 일시적으로 연락을 끊는 게 아니라 디지털 기기와 멀어지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로 통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디지털 단식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작정 단절되기보다는 사용량을 줄이는 소식(小食)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스마트폰 앱을 다섯 개 이하로 남겨놓고 하루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서서히 줄이는 게 첫걸음이다. 현관에 휴대폰을 놓는 자리를 정해놓고 집에 있을 때는 쳐다보지 않는 디지털 단식도 좋은 방법이다.

디지털 단식을 돕는 애플리케이션도 인기다. 앱을 깔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일정 시간 동안 휴대폰을 쓸 수 없다. 급할 때 잠깐 쓸 수 있긴 하지만 잠금을 완전히 풀려면 일정 금액을 결제해야 한다. 30분짜리 입문 단계서부터 48시간짜리 마스터 단계까지, 도전 기간을 달리 설정할 수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프리랜서 김모(여·35)씨는 스마트폰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 얼마 전엔 아예 집의 인터넷을 끊었다. 업무 때문에 노트북을 버리진 않았지만 꼭 필요한 때에는 커피숍에 가서 와이파이를 잡아서 쓴다고 한다. 김씨는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모바일로 뉴스를 보는 게 꼭 필요한 활동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며 "불필요한 정보에 노출되지 않을뿐더러 사실상 연락이 끊긴 인간관계도 자연스레 정리가 됐다"고 했다.

이들을 겨냥해 디지털 단식 환경을 마련해주는 곳도 있다. 강원 홍천에 있는 한 리조트는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다. 투숙 기간 동안은 디지털 세계와 완전히 단절돼 명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커피숍도 서울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보의 풍성함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며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면서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회 현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 단식에 실패하고 예전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물론 있다.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이모(29)씨는 "주말 하루라도 디지털 단식을 하겠다고 카카오톡 프로필도 '필요하시면 전화주세요'라고 바꿔놨지만 어김없이 업무 관련 연락이 쏟아졌다"며 "인터넷에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단식은 배부른 소리"라고 말했다.